핀란드 디자인
핀란드의 지리적 여건은 이 나라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스웨덴과 러시아, 두 강대국 사이에서 번갈아가며 오랜 지배를 받았던 핀란드의 역사적 사건들은 디자인 발전 과정에도 주요한 변화 요인으로작용했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발발한 산업 혁명은 유럽 전역에 충격과 함께 다양한 일상의 변화를 가져왔고 핀란드에 첫 증기 기관이 설치되었던 것은 1857년에서 였다. 이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 속 자치국 (Grand Duchy ofFinland)이었고 풍족한 산림 자원을 중심으로 목재가공 공장, 방적 공장 등이 있었으나 이는 현재 우리가 기대하는 디자인 제품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체계적인 공장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아 대부분의생활용품은 마을에서 수공업으로 소량 생산을 했다.01
당시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핀란드는 대외적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지만 1865년 러시아 화폐 루블(Rouble)로부터 독립된 핀란드의 첫 화폐 Markka를 만들며 국내외로 핀란드가 하나의 국가임을 알리기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1860년대에는 핀란드어를 스웨덴어와 함께 공식 국어로 정하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애국심이 일기 시작했는데, 이즈음 공예품 역시 강한 민족주의를 반영하기 시작하며핀란드만의 특성을 내보이기 시작했다.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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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도 핀란드 화폐 Markka. 앞면은 Alvar Aalto, 뒷면은 그의 건축 Finlandia Hall이다.Suomen Pankki (banknote), European Central Bank (photo) |
핀란드 디자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는 Craft School로 이는 현재 Aalto University School of Art, Design and Architecture(구 university of art and designhelsinki)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최초의 디자인 교육기관으로서 1871년 설립 될 당시 수공예에 가까운 장식품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기관의 역할을 했다. 이 학교의 교육은 Finnish Society of Craft and Design(현재 nnish design museum)이 담당했다. 초반에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지에서 들어온 장식품이나 생활용품을 본보기 삼아 재현하는 것이 주된 수업 내용이었으나, 1900년대에 들어서며 교과 과정이 조금씩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하여 초기 64명에 불과했던 학생 수는 600여명에 육박하게 되었다.03
당시 러시아의 허락 아래에 학교 설립이 가능했는데 이 교육 기관이 당대에 가지던 의미는 컸다. 이는 국내산업의 발전, 국내 시장의 확대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국외로의 수출과도 깊은 연관이 있어 결론적으로애국심 고취와 연관이 깊은,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핀란드는 한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예술 , 디자인, 건축 분야에서도 강하게드러났다. 당시 서유럽 국가들은 앞다투어 커다란 규모의 국제 박람회를 개최하였는데 핀란드는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 단독으로 참여하여 국제적 관심을 받는 데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당시핀란드 전시관은 핀란드의 자연을 소재로 장식되었으며 직물이나 도자기, 목재 가구 등 다양한 수공예품을 선보였다.04
핀란드 제품 디자인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17년 러시아로부터의 독립 후 1930년대부터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제품 디자인은 공예에 가까운 성격을 지녔고 순수 예술과 건축보다 하등의분야로 인식되었다.05 제품의 경우 건물 내부를 채우는 소품 정도로만 여겨졌기 때문에 제품 디자이너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환경은 갖추어지지 않았고 항상 건축가로부터 제품 제작 의뢰를 받거나 건축가고안한 형태를 그대로 만들어내는 기술자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었다. 사실상 당시 대부분의 핀란드 사람들은 농, 축산업 중심의 전원 생활을 하고 있어서 제품의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1900년대초부터 서서히 해외로부터의 수요가 증가하고 핀란드 국내에 스웨덴과 영국 등지로부터 들어온 신제품, 즉 전화기나 자동차, 청소기, 전등, 기차 등이 소개되면서 국내 제품의 제조 환경 역시 차츰 변화하기 시작했다.제조 회사들이 대량 생산을 가능케하는 기술을 서서히 도입하고 디자이너를 전문가로 고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텍스타일과 도자기 분야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고06 전쟁 이후 빠른 경제 성장으로 일반인의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가정용 가구 산업도 그 뒤를 따르게 되었다.
1920년도에 북유럽 전반에 크게 유행하던 Nordic Classicism(노르딕 클래시시즘)07 이후 1930년도에는 도시를 중심으로 건축, 예술, 디자인, 문학 등에 Modernism(모더니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핀란드 모더니즘은 그 뒤에 자연스럽게 뒤따라 온 Functionalism(기능주의)과 맞물려 오랫동안 그 영향력을 행세하게 된다.08 이는 독립과 전쟁 이후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며 새로운 직업이 생겨남에 따라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한 사람들이 집 내부 구조와 소품의 기능과 편의, 효율성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제품 디자인 영역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09 사용성이 고려된 가구와 식기, 카펫 등은 젊은 부부들의 관심을 끌었고 공장의 대량 생산 설비는 더욱 체계화되었다.
핀란드의 모더니즘과 기능주의는 목재 가구를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Alvar Aalto(알바알토)를 앞세우며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특히 그는 부인 Aino Aalto(아이노 알토)와 함께 1936년도 밀라노,1937년 파리에 이어 1939년도 뉴욕에서 큰 상을 휩쓸며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한다.10 이러한 핀란드 디자인의 국제적인 규모의 성공은 유리, 도자 분야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1936년 Kurt Ekholm이 Arabia(아라비아) 도자 회사에서 선보인 Sinivalko(Blue-White)는 서로 쌓을 수 있어 수납이 용이해 모더니즘을 반영한 핀란드의 첫 식기로 알려져 있다.11
1940년대 제 2차 세계 대전의 영향력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핀란드는 전쟁의 폐해로 극심한 재료 부족 현상에 시달렸고, 이는 디자인 영역에도 큰 영향을 미쳐 사람들은 그 전보다 훨씬 더 물건의 효율성과 기능성을 따지게 되었다. 제조 회사 역시 간결하면서도 대량 생산이 용이한 제품을 고안하는 데에 주목, 전문 디자이너를 고용하기 시작했다.12
1951년과 57년 Milan Trienale(밀란 트리엔날레)에서 핀란드 디자이너들이 대다수의 상을 휩쓰는 경이로운 일이 벌어진다. Ilmari Tapiovara(일마리 따삐오바라), Alvar Aalto(알바 알토), Lisa Johansson-Pape(리사요한손-빠뻬), Tapio Wirkkala(따삐오 비르깔라), Timo Sarpaneva(띠모 사르빠네바)는 상상을 초월하는 외국 언론들의 관심을 받았으며13 이는 이 핀란드 디자이너들과 해외 회사와의 활발한 교류를 의미하였다.
1960년대 핀란드 디자인 교육은 산업과 더욱 밀접히 연계되는데 Art and Cra School은 University of Industrial Arts Helsinki로 이름을 바꾸고 이 학교는 앞으로 수년간 북유럽에서는 유일한 디자인 대학으로 남았다.14 또한 디자인과 디자이너에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디자인 서비스를 파는 개인 회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15 텍스타일 디자인 회사 Marimekko(마리메꼬)가 전성기를 맞이하고 플라스틱과 금속이 가전 제품 디자인을 중심으로 널리 활용되기 시작하였고 Ani Nurmesniemi(안띠 누르메스니에미)와 Faj Franck(카이 프랑크), Eero Arnio(에로 아르니오)와 같은 디자이너들이 세계 디자인 역사에 길이 남을 결과물을 내놓으며 1950, 60년대는 핀란드 디자인이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몇몇 성공적인 인물의 이름에 가리워진 젊은이들에게는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16
1980년대에 들어서며 가전 제품들이 일반 가정에 보편화되면서 디자인 영역은 산업과 전에 없는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핀란드 자동차 회사 Sisu와 휴대폰 회사 Nokia는 산업 디자이너들을 고용, 제품 개발에 본격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한다.17 이어 1990년도에는 Turku(뚜르꾸)에 핀란드의 첫 디자인 전문 회사 ED-Design가 등장하며 개인 디자이너의 사회적 활동이 더욱 뚜렷해졌다.18
1990년대 초에 핀란드경제에 불어닥친 불황은 금새 지나갔지만 그 후 세계화(globalization) 현상으로 핀란드 산 제품이 상대적으로 생산 비용이 저렴한 동유럽, 아시아 국가들과의 가격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과정에서 많은 핀란드 제조사들이 문을 닫아야 했지만 Artek, Marimekko, Iiala, Fiskars 등의 회사는 살아남아19 오히려 일본과 한국, 중국 등의 시장에 적극적으로 발을 들여놓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Nokia의 성공에 고무되어 휴대폰을 중심으로 Usability가 새롭게 연구되기 시작했고 곧 이어 여러 분야에 걸친 종합적 사고가 요구되는 인터넷 웹페이지 디자인이 새로운 디자인 영역으로 떠올랐다.20 1990년대 말부터 핀란드 정부는 디자인을 산업과 경제와 함께 묶는 핀란드 디자인 정책을 준비하고, 이는 공기관과 교육 기관에 적극적으로 소개, 활용된다.21
Sinivalko©Arabia |